달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머니

당신은 항상

달빛 속으로 걸어오시는 것 같아요

자분자분 옮겨놓는

그 걸음걸이

일흔의 나이에도

금방 울음을

쏟아 놓을 것 같은

그 눈망울

살며시 미소를 터트릴 때에는

부끄러움 많은 소녀 같기도 해요

어머니 당신을 볼 때면

고향의 그렁그렁한 달빛 생각이 나고

오늘처럼 이렇게 달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머니

사무치게 당신이 그리워져요

어느덧 내 눈에 눈물이 솟고

그 눈물 흔들거리며

치렁치렁

당신 곁으로 달려가요. 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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큰 산이 작은 산을 업고

놀빛 속을 걸어 미시령을 넘어간 뒤

별은 얼마나 먼 곳에서 오는지

처음엔 옛사랑처럼 희미하게 보이다가

울산바위가 푸른 어둠에 잠기고 나면

너는 수줍은 듯 반짝이기 시작한다

별에서는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

별을 닦으면 캄캄한 그리움이 묻어난다

별을 쳐다보면 눈물이 떨어진다

세상의 모든 어두움은

너에게로 가는 길이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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월세 전세 매매

바둑판처럼 써 붙인 천우부동산 앞

민들레 냉이 꽃다지 풍년초가

서대문구 모래내 살던 이웃들처럼 모여 있다

보도블럭에서 한 뼘쯤 낮은 천우부동산

그 한 뼘 벽이

씨앗들 기댈 언덕이었구나

시멘트 벌어진 틈이

한 일가를 이룬 홈이었구나

빈틈없이 살아야 한다는 다짐


틈이 없다는 것은

깃들일 품이 없는 것이었구나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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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년 도마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박형준


도마가 그립다

이제 아무도 살지 않는

고향 집 부엌에

도마는 여전히 거기 있을까


감나무로 만든 도마

우리 집 여자라면

한 번쯤 단단히 스쳐갔을

칼집 난 자리가

집안의 손근이 되어버린

백년 도마


다른 건 몰라도

생명선은 길어서

그대로 있을지 몰라


가마솥에 밥물이 끓어 넘치면

솥뚜껑을 열어제치고

뭉텅뭉텅 김치를 썰어

척척 밥에 감아 먹던

치매 할머니와


얼굴 한 번 못 보고

시집와선

눈썹과 눈썹이 달라붙은

신랑이 미워 첫날밤에

양미간의 눈썹을 뜯어 넓혔다는

어머니의 매운 손매와


김칫독에서 막 꺼낸

살얼음 낀 김치를 썰 때

도마에서 나던 초겨울의 소리

그립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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도토리 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이종수


어머니, 

식구들 위해 버섯 따러 가셨다가

가슴에 얹은 비석처럼 가풀막진

숨 갱신갱신 따라가다가

헛디뎌 비얄에서 구르셨다는데

비얄을 구르면서도 하셨다는 말

눈 뜨고는 못 듣겠다. 


연신 구르면서

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고

맙습니다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고맙습니다

하다가 나무뿌리에 간신히 걸친 신세가 되고 나니

왜 그런 말을 했을까 싶으셨다는데

일어나니 어디 다친 데 없이 가뿐하시더란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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느티나무로부터

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  - 복효근


푸른 수액을 빨며 매미 울음꽃 피우는 한낮이면
꿈에 젖은 듯 반쯤은 졸고 있는 느티나무
울퉁불퉁 뿌리, 나무의 발등
혹은 발가락이 땅 위로 불거져 나왔다
군데군데 굳은살에 옹이가 박혔다
먼 길 걸어왔단 뜻이리라
화급히 바빠야 할 일은 없어서 나도
그 위에 앉아 신발을 벗는다
그렇게 너와 나와는
참 멀리 왔구나 어디서 왔느냐
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느냐
어디로 가는 길이냐 물으며 하늘을 보는데
무엇이 그리 무거웠을까 부러진 가지
껍질 그 안 쪽으로
속살이 썩어 몸통이 비어 가는데
그 속에 뿌리를 묻고 풀 몇 포기가 꽃을 피워
잠시 느티나무의 내생을 보여 준다
돌아보면
삶은 커다란 상처 혹은 구멍인데
그것은 또 그 무엇의 자궁일지 알겠는가
그러니 섣불리
치유를 꿈꾸거나 덮으려 하지 않아도 좋겠다
때 아닌 낮 모기 한 마리
내 발등에 앉아 배에 피꽃을 피운다
잡지 않는다
남은 길이 조금은 덜 외로우리라
다시 신발끈을 맨다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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